선불장-삼일선원 황벽어록21(2020년10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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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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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장-삼일선원 황벽어록21(2020년10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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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탄허재단 삼일선원 Date20-10-12 00:00 Hit48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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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지금 여기 내 일이다

2020년 10월 11일 선재 선생님 법문입니다.

1.(1) 지금 여기일 뿐이다.

모두 지금 여기 生命(생명)이요,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인 내(眞我진아, 如來여래) 일뿐이다.
지금 여기 現存一念(현존일념)이요 現存一覺(현존일각)인 覺(각)이다.
日常(일상)이 道(도)요, 覺(각)이다.
지금 여기 主客合一(주객합일)의 視覺(시각)이요, 지금 여기 主客合一의 聽覺(청각)이요, 지금 여기 主客合一의 嗅覺(후각)이요, 지금 여기 主客合一의 味覺(미각)이요, 지금 여기 主客合一의 觸覺(촉각)이요, 지금여기 主客合一의 생각이다.
萬有(만유)의 바탕인 覺(각)이다.

하..늘..이..맑..습..니..다.
바..다..가..깊..습..니..다.
산..이..높..습..니..다..
저..놈..은..나..쁜..놈..입..니..다.
이..사..람..은..착..한..사..람..입..니..다.
그..녀..는..아..름..답..습..니..다.
이..것..은..보..기..싫..습..니..다.

이뿐이다.
저기 일은 하나도 없다.
만약 저기 일로 본다면 이는 妄想(망상)이나, 이 역시 지금 여기 天上天下唯我獨尊인 나, 如來(여래)의 일이다.
마음이 疏外(소외)된 일은 한순간도 없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일이다.

(2) 天上天下唯我獨尊인 覺이다.

비교가 끊겨 어떤 依存(의존)도 없이 스스로 나(眞我,진아)일 수가 있는 全 存在(전 존재)인 覺(각)이다.
覺이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그 전 존재는 먼지도 되고 우주도 된다.
먼지와 우주가 둘이 아니다.
그래서 작으면 안이 없고, 크다면 밖이 없다고 한다.
비교에서 벗어나 스스로 尊貴(존귀)하다.

(3) 지금 여기 내 일일 뿐인데 善惡(선악)이 어찌 따로 있을 것이며, 美醜(미추)가 어찌 따로 있을 것이며, 貴賤 貧富 優劣 上下(귀천 빈부 우열 상하) 등이 어찌 따로 있을 것인가?
모두 둘이 아닌 지금 여기 내(如來, 여래) 일이다.

(4) 世上(세상) 일이 하나같이 지금 여기 全 存在인 如來의 일인데, 거기에 무슨 取捨(취사)가 있겠는가?

그저 지금 여기 이 일을 짊어지고, 살아낼 일이다.
그렇다고 짊어지고 살아내는 行爲 主體(행위 주체)가 따로 있다는 것은 아니다.
행위 주체가 없는 全的(전적)인 受容(수용)이요 歸依(귀의)다.
比較(비교)가 없어 苦難(고난)이 고난이 아니요, 굴레는 굴레가 아니며, 地獄(지옥)은 지옥이 아니다.
오히려 安心立命(안심입명)의 길이요, 解脫(해탈)의 길이다.
釋迦(석가)가 왕궁을 버리고 짊어진 길이이요,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진 길이다.

2. 본래 主客合一(주객합일)의 지금 여기 覺(각)뿐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름이 들어서면서 시공간으로 나뉘고, 이를 바탕으로 만물이 태어난다.
본래 둘이 아니므로, 이와 같이 나누어진 만물은 實體(실체)가 없는 이름일 뿐이다.
이제 만물은 다만 비교를 통해서만 존재할 뿐, 어떤 의존도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남을 의존하여서야 존재할 수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自性(자성)이 없어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비교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될 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언제나 비교와 갈등이 따른다.
苦海(고해)라고 불리는 娑婆世界(사바세계)다.

3. 入廛垂手(입전수수)

나를 비롯한 만물은 이름일 뿐이다.
이름을 통하여 時空間(시공간)을 만들어내고, 萬物(만물)을 만들어낸다.
이름은 社會的 約束(사회적 약속)이며 道具(도구)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如來(여래, 眞我진아)는 이름일 뿐인 東西南北(동서남북)을 동서남북으로 쓰며, 이름일 뿐인 過去 現在 未來(과거 현재 미래)를 과거 현재 미래로 쓰며, 이름일 뿐인 山(산)을 산으로 쓰며, 이름일 뿐인 물을 물이라 쓰며, 이름일 뿐인 善(선)을 선이라 쓰며, 이름일 뿐인 惡(악)을 악이라 쓰며, 이름일 뿐인 美(미)를 미라 쓰며, 이름일 뿐인 醜(추)를 추라 쓰며, 이름일 뿐인 貴(귀)를 귀라 쓰며, 이름일 뿐인 賤(천)을 천이라 쓰며, 이름일 뿐인 富(부)를 부라 쓰며, 이름일 뿐인 貧(빈)을 빈이라 쓰지만, 여기에 머물러 取捨(취사)하지 아니한다.
머문 바 없어 取捨하되 취사한 바 없다.
모를 수 있는(但知不會, 단지불회) 眼目(안목)으로 이름을 쓰며 살아간다.

4. 向上一路(향상일로)

모를 수 있으면 삶이 向上一路의 길이다.
理致(이치)는 “문득 깨닫는 것이나(理卽頓悟이즉돈오) 실제 삶에서는 문득 놓여나지 못한다(事非頓除사비돈제).”고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름을 알 뿐이다.
나누이기 전의 통째인 있는 그대로의 眞理(진리)는 알 수가 없다.
알자마자 나누어진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開口卽錯개구즉착).
그렇다면 앎의 抛棄(포기)가 卽見如來(즉견여래)다.
그러나 그것으로 事非頓除(사비돈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向上一路(향상일로)가 말해지는 것이다.
“이뭣고?”는 참으로 모를 수 있을 때 생명이 던지는 질문이다.
만약, 우리 가슴에 “이뭣고?”가 살아있다면, 이것이 向上一路의 길일 것이다.

고칙 70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꿈 속에서 육바라밀을 설하는 것이 깨어 있을 때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 이치가 깊고 그윽해서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모임에 미륵 대사가 계시니, 그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이윽고 사리불이 미륵에게 물으니, 미륵이 대답하였다.
“누구를 미륵이라 여기는가? 누가 미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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