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띠운세 소띠운세 음력3월 양력4월 부부금실 자녀운 금전운 재물운 2020년 경자년 신년운세 - 안산 용한 무당 점집 추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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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굿엔트 Date20-03-05 00:00 Hit40 Comment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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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띠:12띠 중 첫 번째 띠로 자년 생(子年生)을 가리킨다. 시(子時)로는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방위로는 정북(正北), 달은 겨울 11월, 계절로는 11월 대설(大雪)부터 12월 소설(小雪)까지, 오행으로는 수(水), 음양으로는 양(陽), 대응하는 서양 별자리로는 사수 좌에 해당한다.
쥐띠 생은 근검 절약하는 버릇이 있다. 어둡고 추운 계절에 해당하므로 신중할 수밖에 없어 소심하고 경계심이 강한 편이다. 쥐띠는 양기가 많아 부지런하고 예감이 날카로우며 재치가 있고 민첩하다. 성질이 한번 폭발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으므로, 쥐띠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자제력과 수양이다.
소띠:12띠 중 두 번째 띠로 축년 생(丑年生)을 가리킨다.
시(丑時)는 오전 1시부터 오전 3시까지, 방위는 북북동(北北東), 달은 겨울 12월, 계절로는 12월 소한에서 정월 입춘 전까지, 오행은 토(土), 음양은 음(陰), 대응하는 서양별자리는 산양좌에 해당한다.
소띠 생은 인내력이 강하고 신의가 두텁고 정직하고 근실한 편이다. 입이 무겁고 끈질기게 노력하고 성실하게 전진하는 행동파에 속하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두드러지고 마음만 먹었다 하면 훨씬 빠른 템포로 목표에 도달하고 만다. 뚝심이 세어 추진력이 강하고 주위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간적 매력이 넘치지만 때로 사랑에 약하고 겁이 많으며 보수적인 기질도 보이고 있다.
민속:민속의 분류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비교적 일반화된 영역설정은 도슨(Dorson, R.)의 『민속과 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민속학의 영역을, 첫째 구비문학(oral literature), 둘째 물질문화(material culture), 셋째 사회적인 민속관습(social folk custom), 넷째 연행되는 민속예술(performing folk art)로 나누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조지훈(趙芝薰)에 의하여 민속학 강의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체계적인 분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분류내용은 ① 구비전승 : 설화(신화·전설·민담·동화·야담·소화)·민요·판소리·무가·속담·수수께끼·방언·은어 및 민속극의 대사.
② 신앙전승 : 예조(豫兆)·점복·금기·주부(呪符)·자연숭배·동물숭배·이인숭배(異人崇拜)·가택신·마을신·무속(무격·무의).
③ 의식·행사전승 : 산속(産俗)·혼속(婚俗)·상장(喪葬)·제례·연중행사(세시풍속).
④ 기예전승 : 음식·의복·주거·민구·민속유희·민속경기·민속무용·민속음악·민속극·인형극·민간의료.
⑤ 공동생활구조전승 : 가족제도·사회구조·경제조직·생업기술(농촌·어촌·산촌) 등이다.
이 다섯 영역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류일 뿐 아니라 민속의 대상을 두루 포괄하는 분류임을 알 수 있다. 그 뒤 개론서나 민속조사보고서에서 분류가 시도된 바 있으나, 책의 체재 및 보고서의 양식을 염두에 둔 편의적인 분류에 그치고 있다.
『한국민속학개설』(1975)에서는 민속을 ① 마을과 가족생활, ② 의식주, ③ 민간신앙, ④ 세시풍속, ⑤ 민속예술, ⑥ 구비문학의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여기에는 농업·어업·수렵·채집·직조 등의 생업기술이 하나 더 첨가되어야 했다. 그리고 세시풍속은 독립되어 있는데 통과의례(관혼상제)는 독립된 영역으로 설정되지 않았다.
『한국민속대관』(1980∼1982) 전6권의 민속분류는 ① 사회구조·관혼상제편, ② 일상생활·의식주편, ③ 민간신앙·종교편, ④ 세시풍속·전승놀이편, ⑤ 민속예술·생업기술편, ⑥ 구비전승·기타편 등으로 되어 있고,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1969∼1981) 전12권도 그 분류는 ① 사회, ② 민간신앙, ③ 산업기술, ④ 의식주, ⑤ 민속예술, ⑥ 세시풍속과 오락, ⑦ 구비전승 등으로 유사하게 되어 있다.
이상의 분류는 어느 것이나 서술의 편의상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다.
한편, 1983년 제2차 한국민속학학술회의에서는 ‘한국 민속학의 연구방법’이라는 주제를 놓고 민속학의 영역별 방법론을 논의하였다. 이 학술회의에서 논의된 민속학의 영역이 상당히 체계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한국민속학의 과제와 방법』(1986)에 수록되어 있는데, ① 민속문학, ② 민속사회, ③ 민속종교, ④ 민속예술, ⑤ 민속물질 등 다섯 개 영역으로 민속학의 영역을 범주화하고 있다.
1987년 안동대학에 민속학과가 처음 생기면서 민속학의 과제 및 영역과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민속학 학술회의를 몇 차례 가진 바 있다.
민속이란 인간생활의 전 영역에 걸치는 광범위한 문화체이므로, 민속의 각 영역들은 자연스러운 통합상태로서 서로 긴밀한 관련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분류도 쉽지 않다. 예컨대, 세시풍속의 하나인 동제(洞祭)는 민간신앙의 한 양식이며 마을이라는 사회공동체의 행사이고, 거기에는 신화적인 흔적이나 전설 등 구비문학이 결부되어 있고, 또 풍물(농악)을 비롯한 민속예술이 따르게 되는 동시에 그것은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행사가 된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세시풍속이라는 한 구체적 대상을 중심으로 민속 전반의 역사나 현황을 종합하여 살피기로 하겠다.
민속의 범위에 대해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즉, 조선조의 유교적인 관복이나 궁중복식 같은 경우를 한국 민속으로 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전기했듯이 민속은 서민층에 전승되는 전통적인 기층문화인 데 비해, 유교문화는 중국에서 전래된 상층사회의 통치이념으로서 군림하던 문화였다. 더구나 한국의 관복을 보고는 중국인들도 쉽게 알아차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이다.
우리는 전파된 지 얼마 되지 않는, 따라서 아직 토착화의 과정 중에 있다고 보여지는 기독교적인 문화들을 도저히 민속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불교적인 초파일 관등놀이나, 유교적인 차례나 시제(時祭) 같은 것들은 오랜 역사과정 속에서 고유문화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그 성격이 변용되고 토착화됨으로써 우리의 세시풍속의 견고한 일부로 정착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민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유교적 복식이나 궁중복식 같은 것도 넓은 의미의 민속의 범주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넓은 의미의 민속에 포괄되는 다양한 연원과 성격의 문화들을 구분할 수 있는 세분된 개념들의 개발이 앞으로 요구됨은 물론이다.
옛 문헌의 기록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영웅·왕공(王公)주 01)·귀족들에게 치우치고, 민속의 기록자료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 공통현상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였다. 예컨대, 세시풍속 같은 것을 기록한 책이 나타나는 것은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된 일이었다.
따라서, 상대(上代)의 민속을 서술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전거(典據)주 02)를 찾아서 한다고는 하여도, 결국은 단편적이거나 추측의 역사를 벗어나기 어렵다. 민속의 역사만 아니고 문화사 자체가 기본적으로는 농경문화의 역사였다.
농경의 시작은 신석기시대부터이고 연대는 서기전 5,000∼1,000년 사이의 4,000년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직 출토된 곡물은 조·피·수수 정도이지만, 그래도 이 장구한 기간에 초기농경사회적인 정착생활과 그에 따르는 세시풍속은 그 나름대로 형성되어 왔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기본적으로 세시풍속이란 인류의 생활에 계절의 환경적 변화만 있으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도 고려할 만하다.
청동기시대는 곡식 종류가 조·수수·피에서 보리·기장·콩·팥·쌀까지 늘어났으며, 농경적인 정착생활은 곡식을 거두어들인 뒤 동장(冬藏)의 한가한 계절을 휴식과 종교와 예술과 놀이로 보내게 된다는 것이 인류학적인 한 상식이다. 청동기시대는 어디서나 금속문화가 시작되는 시기로서, 초기의 국가형태를 갖추게 되는 시대이다.
청동기시대에 한국 무속의 장엄하고 뚜렷한 첫 증거품으로서 청동의기(靑銅儀器)들인 거울과 방울과 검의 세 종류가 있다. 이 종류는 지금껏 금속 무구(巫具)로서 중요시되고 있는 명두와 무당방울과 신칼과 종류가 합치되어서 무속의 역사를 아울러서 증명해 주고 있다.
먼저 거울인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은 그 정교한 문양으로, 현대의 명두를 완전히 무색하게 한다. 방울도 마찬가지이나 특히 방울은 팔두령(八頭鈴)·오두령, 그리고 다시 다양한 두 개의 방울 형태들이 출토되어서 무속의 춤과 노래의 형태가 다양했으리라는 것을 짐작시켜 주고 있다. 창검 종류로는다시 세형동검(細形銅劍)에 과(戈)·모(矛)들이 있고, 그 중 전혀 날이 서 있지 않아서 고고학계에서도 종교의기라고 지적하는 것들이 있다.
이상 청동의기들이 현대의 금속 무구들보다도 놀랍도록 정교하고 훌륭한 이유는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오늘날 무속은 서민층의 민속으로서 미신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고, 이 청동의기들은 제정일치사회의 군장이자 제사장의 존엄성까지를 보여주는 상징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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